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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갈 5:16-26)


성령의 열매 (갈 5:16-26) 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 (갈 5:16-26)


우리가 이렇게 교회 다니고, 또 신앙 생활하면서 한 가지 공통된 바램이며, 동시에 신앙인의 목표로 삼는 것이 있다면 칭찬받는 신앙인의 모습이 되고 싶다는 것일 겁니다. 이러한 칭찬받는 모습을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볼 수 있겠지요. 하나는 덕을 끼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모습으로 교회에 덕을 세움으로 교회에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그러한 모습을 원한다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열매 맺는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와 같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산다면 우리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이나 교회에 큰 유익이 되리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덕을 끼치는 모습이나 열매 맺는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덕을 끼치고 열매 맺는 자세를 지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덕을 끼치는 모습이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 모습 모두 아름답고 훌륭한 신앙인의 자세요, 목표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에는 약간의 구별은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덕을 끼치는 모습을 꽃꽂이를 잘 하여 놓은 아름다운 장식품과 같다고 한다면, 열매를 맺는 것은 문자 그대로 과실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 다 아름다운 것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이렇게 꽃과 열매와 같은 차이는 있다고 보겠습니다. 덕이란 보기에 좋아서 분위기를 아름답게 해 주는 꽃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열매란 열매 그 자체를 제공해 주는 그런 모습이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은 “열매”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흔히 “열매”라 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과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에 꽃피고, 꽃이 지면 맺게 되는 열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흔히 “열매” 하면 우리는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는 결과로서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리라 봅니다. 이러한 열매의 모습을 신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특히 예수님의 모습을 이러한 열매라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떤 모습일까요? 성경 말씀 고전 15:20에 보니까, 예수님을 열매로 표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렇게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성경은 말씀할까요? 우리는 여기서 열매라는 말의 그 귀중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처음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하심에 대해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행 2:23-24,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또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이러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보아 알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는 것이지요. 이 말씀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는 자기 스스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에 부활하시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엿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예수를 다시 살리셨을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을 표현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간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라고 증거 합니다. 그래서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이유는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도 다시 살게 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열매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매에는 이러한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세상의 모든 과실들은 그 안에 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씨로 새로운 열매를 잉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삼으셨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에의 의지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란 말에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열매에 대한 이해를 배경으로 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을 말씀하면서, 육체와 대조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과 서로 대립되는 모습으로 말씀합니다. 즉, 성령이 원하는 일은 육체가 원하지 않고, 육체가 원하는 일은 성령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 가서는 성령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며, 육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성령이 원하는 일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모습을 열매로 맺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육체가 원하는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한 것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령이 원하는 일의 결과를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한 데 비해서, 육체가 원하는 일의 모습을 “육체의 열매”라 하지 않고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독일의 현존하는 유명한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 박사는 “생명의 영”(The Spirit of Life)라는 성령론(Pneumatology)에 관한 책을 냈는데, 이 책에서 몰트만 박사는 오늘 본문 갈 5:22 이하의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 열매들은 ‘음행, 추행, 방탕,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등 ‘육의 일들’과 대립됩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육의 일들’과 ‘성령의 열매’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육의 일들’은 ‘만들어지는’(make) 것이고, ‘성령의 열매’는 ‘자란다’(grow)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Let us look at the biblical images. The Bible turns readily to images of the tree and its fruits: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These fruits are directed against 'the works of the flesh': 'strife, jealousy, anger, dissension, party spirit, hate, murder ... '(Gal 5:22, 19). If this image is correct, then the works of the flesh are 'made' but the fruit of the Spirit 'grow'. We cannot make it, but we can let it grow in us.)"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언급하면서 육체의 일과 대조하면서, 성령의 열매와 빗대어서 ‘육체의 열매’라 하지 않고 ‘육체의 일’(the works of the flesh)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매’란 자라는 것(grow)이고, ‘일’은 만드는(make)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만드는 것과 자라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란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커가는 것이고, ‘만든다’는 것은 그 사람, 곧 당사자의 의도가 들어가는 것을 의미입니다.
자, 그럼 예수님의 경우에서 한번 보십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부활하심’을 의도해서 죽으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면 하나님이 나를 다시 살리시겠지” 하고 죽으신 것이냐는 말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까? 그것은 사도 베드로가 분명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라고 설교한 증거에서 보듯이, 부활은 예수님의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결과요, 열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성령의 열매와 관련시켜 볼 때에 우리가 생각하는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우리 자신의 삶을 맞출 때에 하나님께서 맺게 해주시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가 인간적인 방식대로 이야기한다면 바로 이렇습니다. 흔히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표와 과정’에 대해서 말들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목표와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목표와 꿈은 이루어지기까지에 과정이 또한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삶의 목표와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그 과정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러한 모습으로 이룬다면 그것이 과연 삶의 목표와 꿈을 바로 이룬 것이겠느냐 하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의 인간 세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을 때로는 우러러보기도 합니다만, 하나님은 이를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이라 함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긍지를 느끼고 자부심을 가지며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의 결과와 성공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며 살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를 의도하여 만들어가며 산다는 것, 즉 의도적으로 살고자 한다는 것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고 정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는 ‘소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욕망과 정열이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욕망과 정열은 하나님의 control을 받을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control을 받는 것이 곧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control을 받지 않고 우리의 의도대로 하고자 한다면 그 결과는 곧 ‘육의 일들의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정과 욕심’은 바로 욕망과 정열(desire and passion)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크리스천이란 바로 무엇보다도 “삶의 자세와 목적에 대해 늘 하나님의 control을 받고자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라고, 또 18절에서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표현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살고자 하면 율법에서 원하는 모든 선한 모습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루며 성공을 이룬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그 하나님의 나에 대한 바램이 무엇인가를 먼저 염두에 둘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압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그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성령을 따라 살며, 성령을 좇아 산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서 사람들이 왕으로 모시려고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도망치듯 피해버리는 예수님의 그 모습을 우리는 압니다. 이런 예수였기에 그가 십자가에 죽은 후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과 노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열매 맺음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주어지는 현실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심을 믿고 우리의 의도를 이 셩령님께 맡기고, 주시는 지침에 따라 순종하며 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의 주관적 의도를 그대로 지닌 채,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오히려 ‘육체의 일들’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렇게 표현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사랑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기뻐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을 우리의 쾌락의 도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화평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분쟁과 원수 맺는 것과 당 짓는 일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오래 참으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가장 적절한 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자비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을 망가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선을 베풀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충성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충성한 만큼 해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온유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용기를 상실한 비겁한 모습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대로 절제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경직된 모습으로 자유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원흉은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려는 인간의 집요한 노력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삶의 과정이 어떤가에 따라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러한 과정에 얼마나 충실하였는가를 심판의 근거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부인되고 거절되어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힘을 빼야 합니다. 나를 죽여야 합니다. 나를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내세워 자랑하려고 그래서 나의 영광을 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매에는 씨가 있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것처럼, 이러한 모습에는 생명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헛된 영광에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이 아니라,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요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우리는 잘 압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열매를 맺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며,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그리고 이러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비결을 예수님은 단 한 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4, 5절에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모습이 바로 자라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라감 속에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칙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법칙에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모든 삶이 육신의 일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로 맺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강국 목사)

2008/10/28 09:50 2008/10/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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