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 때엔 꿈이 있었다. - 열두번째날2, 바고/양곤
마하제디 Mahazedi paya 1560년, 버잉나웅왕, 거대한 탑이라는 뜻. 스리랑카 캔디에 있는 치사리를 기증받은 기념으로다가 세웠는데, 꽁바웅시대에 치사리는 만들래이지역의 사가잉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도 1757년 약탈, 1903년 지진 등 여러번 복구가 됐던 탑답게 건물도 그렇고, 부처님도 그렇게.. 뭐 너무 새로 만든 냄새가 나서 새삼스럽지 못했다는.. 게다가.. 이제 이 동네 불상들의 얼굴 표정이 영 좀.. 신격화 되지 못해서리.. 그냥 잠시 돌다가.. 여자는 위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팻말을 보고 핑계김에 덩달아 나도 금방 나와 버렸다는.... 아직 몇군데 더 봐야 하는데.. 갑자기 솟아오른 게으름....
(슬슬 그 절이 그 절이라는 핑계를 시작..)
(봐도 봐도 낯익은...)
(입구에 있던 흙냄새 물씬...)
차가 다시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향한다. 기름도 넣고. 복잡한 골목도 지나고.. 다시 시장통을 지나 기차역도 지나고.. 골목을 들어서니. 차가 건물안으로 바로 들어갔다.
Maha Kalyani simaz(Thein) 1476년, 담마제디왕, 처음에 397개의 교실을 가지고 출발한 승가학교다. 스리랑카의 양식을 카피해서 그대로 옮긴 이 사원은 몇 번의 약탈 및 파괴를 거쳐.. 그래도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승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몬어와 빨리어로 된 테이블 등 넓은 홀에 들어가면 공부하는 스님들을 볼 수가 있다는데, 이거 참.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길게 누워서 꿈 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스님들만 눈에 띄더라는 것. 동네치고는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 옛날의 영화가 지금 한 순간의 꿈이다라는 것을 역설해 주는 것 아니겠나 싶어서리. 잠깐 숙연 모드.. 넓은 강당의 호사스런 의자.. 그런데 정말 이 홀은 나도 누워서 길게 있고 싶었다..... 부엌, 스님들 침실 등 잡다한 것까지 들여다 본 것은 순전히.. 옆에 있는 아저씨의 호기심이다..
(식당과...)
(사람들을 불러 모우는 북.. 가운데 큰 틈새가 공명통이겠지.. 닮은 깊이와 세월이..)
(식사가 끝난 뒤)
(우리와 같이 종일 다니던...)
(나도 저렇게 눕고 싶었으나..)
점심은 도심의 골든 트라이앵글 Res. 차는 1시 20분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지들끼리 간다. 근처에 몇 개의 게스트 하우스도 보이는 것을 보니 도심은 도심인 모양인데, 한 낮, 먼지와 빵빵대는 길거리를 보니 숙박을 피하는 게 좋은 듯. 아침일찍 와서 그냥 하루종일 놀다가 짜익티요나 양곤을 가던지 아니면 그냥 초행길이면 바간이나 만들래이로 밤차타면 딱 좋을 듯하다. 짐이야 뭐 차가 모시고 있겠으니..
(트라이앵글 식당..)
(이 두개 모두 너무 맛있었다.. 돼지등뼈는. 정말.. )
이 식당. 그래도 좋은 카페인 모양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현지인 손님들이 꽤 있다. 그리고 아마 다방 구실을 하는지, 계약서(맞겠지 뭐)도 들여다보면서 담소들을 나누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없고, 몇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생맥주다. 그리고 안주삼아 요리 한개 정도. 아니면 감자칩 비슷한 마른안주다.. 그러고 보니 미얀마 비어만 외치는 바람에 생맥주 한 잔 못 먹어 봤는데? 했다만.. 참았다. 밖의 기온이 장난 아니게 뜨거워서 자칫 오후 일정을 메롱메롱 거릴까 싶어서리.. 그냥 영어 메뉴판 보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닭고기 탕수와 포크립을 시키고 맨밥 두 접시를 시켰다. 이게 편리한 것이 꼬마애가 영어를 못해도 메뉴판이 영어고, 나중에 눈치봐서 계산서 갖다주니 정말 소통이 문제없다러는 것! 그래서 외국인한테 꼭 계산서를 주는 모양이다. 생수를 부탁했는데, 매일 먹던 것이 아니라 중국상표.. 게다가 이게 그러니까 대형 생수통에 담겨져 있는 것을 물병에 따라서 갖다 줬는데.. 흐흐 괜시리 잘난 척 하느냐고 약간 망설였으나.. 시원하고 좋았다는.. 가뜩이나 옆 테이블 생맥주가 부러워 죽겠는데.. 음식이 너무 늦다. 돼지뼈 이제 자르는 지 주방에서 뼈 치는 칼 소리가 장난 아니다. 마침 전기가 살짝 나가.. 흐흐. 양산박 무대 생각났다. 그런데, 음식은 장난 아니게 맛 있었다. 시골 식당, 유일한 음식이라 야채도 뭐 한 두가지 대충 아니겠냐 했는데. 그 한 접시속에 어찌나 다양한 야채를 넣었는지. 그리고 정말 막 뽑은 듯한 신선함에 반했다는 것. 돼지갈비등뼈는 장난 아니게 맛있어서 모처럼 목에 먼지 제거 시켰다. 모두 4,100ks.
약속된 시간이 지났으나, 내가 좀 쉬고 싶어서 잠시 대기. 그리고 출발했다. 배도 부르고 졸립기도 하고.. 이미 다리는 풀렸고.. 쩝!
쉐모도삐야 Shwemawdaw paya (큭큭, 년대확인을 위해 지금 세권의 책(론니, 국내 가이드북 2권)을 모두 꺼내놓고 확인한 바, 첫 문장이 다 같다. 그냥 롱롱타임 어고우.. 흐흐. 1,000년전쯤 이란다.) 그러고는 왠 일인지 세세하게 탑 높이 변천사는 년대기를 다 달았다. 결론적으로 처음에 몬족이 부처님의 머리카락 2개를 사리를 모시기 위해 23m로 시작된 탑이, 증축을 계속해 오다가 1385년 이번엔 부처님 치사리를 추가하면서 (미안, 사리 추가! 란 썰렁개그를 안 할 수가 없다) 84m가 됐고, 1954년 지진 등으로 무너진 탑을 재건축하면서 지금의 높이인 114m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양곤의 쉐다공 보다 도리어 높다면서도 주위의 부속건물이나 넓이가 양곤 것과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꽤 넓고 정갈하고 역사를 보인다는 것. 나른한 몸. 쉬엄쉬엄 느긋하게 한바퀴 돌면서 미얀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삼배를 하기도 하면서.. 부속건물들의 조각품들이 다소 동화 스러운 것. 이게 혹시 몬족의 특징이 아닌가 싶고. (혹시 노르웨이나 핀란드 선조들이 여기와서 전해 준 것이라고 우기지는 않겠다만,,,그러니까 나무로 조각을 하는 예술가의 손은 그 땐 다 조금 개구쟁이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담배 피면서 놀고 있는데.. 아마 들어오면서 바로 좌측으로 돌아서 못 본 모양이었다.
노아의 방주처럼 배 모양으로 쌓은 벽돌 위에 조그만 탑을 올려 놓았길래 정면으로 갔더니.. 원형인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 물어 보려다가 하도 영수증 영수증 했더니 아예 한 10m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 부르기도 존심 상해서.. 그냥 패스. 그 대신 오른 쪽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아마 이 동네 여기 저기서 모아 놓은 것 같았는데.. 유리 너머 전시품들이 의외로 욕심나는 것이 많았다. 좋다 하면서 시간 잡아 먹기하고 있는데 안되겠던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시계를 가르키며 이제 가잔다.
(이건 무슨 양식일까?)
(행운의 동전을 던져 보세요..)
(간이 박물관.. 입구.. 왠지 큰 기둥.. 행사때 사용했을 것 같은..)
(이건 왕조의 상징인 공작의 다른 모습이 아닌.. 이 동네의 탄생설화인.. 바다에서 솟아 오른 닭이다)
(닭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설명..)
(나오는데. 왠 절에.. 이리 이쁜 ? 쓰레기통인가.. 흐흐)
